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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경험

청소의 제국

by Productivity Skill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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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제국

2020년 4월 6일, 목요일

오늘도 그 날이 왔다.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된 '대청소의 날'.

눈을 뜨자마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마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아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사무실 도착 시간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나를 거울 속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눈빛은 공허했다.


제1장 : 400평의 감옥

"이 건물 전체가 2,400평이라고?"

첫 출근 날, 인사팀 직원의 말에 나는 그저 감탄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넓은 공간이 내 땀과 그리고 직원들의 눈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줄은

지하부터 5층까지, 각 층마다 400평. 화려하게 보이려 꾸민듯한 로비와 그리고 사무공간, 어두침침한 회의실들.

그러나 이 거대한 공간을 관리하는 청소 인력은 고작 두 명.

그것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었다.

"왜 청소 인력이 이렇게 적죠?" 호기심에 물었던 나의 질문에 선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제2장 : 청소의 의식

오늘이 바로 그 '대청소의 날'이다. 매주 목요일, 모든 직원들은 마치 종교 의식을 치르듯 동시에 움직인다.

오후 5시 50분, 한 직원이 큰소리로 외치면서 로봇 청소기 마냥 돌아다닌다. 

 

"존경하는 임직원 여러분, 지금부터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배정된 구역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각자리의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군대의 훈련병들처럼, 혹은 디스토피아 영화 속 통제된 시민들처럼 정확히 동일한 동작으로.

책상 밑에서 청소 도구를 꺼내는 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메아리쳤다.

내 담당 구역은 3층 남자 화장실 앞 복도.

지난 한 달간 각 부서에서 모아둔 폐휴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내 옆자리 대리는 고무장갑을 끼면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휴지더미를 지하까지 운반해야 해. 엘리베이터는 사용 금지야. 계단으로."


제3장 : 빛의 관리자들

청소 의식이 끝나면 다들 급하게 퇴근 ^^

또 출근 후,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모니터 위 형광등이 깜빡이더니 꺼졌다.

"아, 또 형광등이 나갔네."

옆자리 선배가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들었다.

"김 대리님, 마케팅팀 세 번째 열 형광등 교체 요청드립니다."

30분 후, 김 대리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 회사의 IT 담당자였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컴퓨터 부품이 아닌 형광등과 사다리가 들려있었다.

"이게 당신 일인가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김 대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래는 아니지. 하지만 우리 회사는... 특별해.

내 본업은 IT지만, 형광등 교체사, 때로는 수도 배관공이기도 해."

그는 능숙하게 사다리를 펼치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손놀림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다른 회사들은 외부 업체와 계약해서 이런 일을 처리하지 않나요?"

김 대리는 천장에서 내려오며 웃었다.

"비용 절감이라나? 아니면 'DIY 기업문화 조성'? 누가 알겠어. 난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야."


제4장 : 반란의 씨앗

3개월이 지났다.

나는 이제 이 회사의 기이한 생태계에 적응했다.

매주 목요일의 청소 의식,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느껴지는 불안감, 그리고 400평을 걸어 다니며 느끼는 발바닥의 통증까지.

그날은 부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팀장이 없는 틈을 타 누군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우리는 프로그래머고, 디자이너고, 마케터입니다. 청소부가 아니에요."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동의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

"다른 회사들은 전문 청소 업체를 고용해요.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요. 형광등 교체도 전문가가 해야 합니다. 언젠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그 말에 회의실 안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청원서를 작성해봐요. 모두가 서명하면 경영진에게 제출하는 거예요."

그때,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렸다. 팀장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요?"

모두가 굳어버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조용하던 최 주임이 용기내어 말했다.

"청소와 시설 관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청원서를 준비중인데... 팀장님도 동참해주시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도 이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왔어. 내 서명이 첫 번째가 되겠다."


에필로그 : 변화의 바람

청원서는 각 부서를 돌며 서명을 모았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직원이 서명했다. 그것은 단순한 청소 문제를 넘어, 회사 문화 전체에 대한 반란이었다.

한 달 후, 경영진의 결정이 내려왔다.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음 달부터 청소 및 시설 관리 전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원 여러분은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전체에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그날 이후, 우리 회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아왔고, 업무 효율성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가끔, 예전처럼 형광등이 깜빡이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시설 관리팀에 연락한다.

"안녕하세요, 4층 마케팅팀인데요.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네요. 교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일로 돌아간다. 더 이상 청소의 제국에 살지 않는,

자유로운 직장인으로서.

 

청소의 제국
청소의 제국

 

1,2,3 장은 개인적인 경험을 풀었으며, 4장과 에필로그는 변화의 희망을 담아서 작성했습니다.

지금도 회사에서 힘들어 하는 직장인들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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